미국과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방산·조선·정유 등 업종별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방산업계는 'K-무기' 화력을 입증하며 수출 무대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해운은 운임 상승, 조선은 초대형 원유운반선 발주(VLCC) 증가 등에 수혜가 예상된다. 반면 정유업계는 고유가와 석유 최고가격제 등 복합 딜레마 속에 정부·소비자 눈치까지 보느라 진땀을 빼는 중이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최대 수혜를 입은 업종은 방산이다. 미사일과 드론을 활용한 공습으로 방공 체계의 중요성이 부각 된 데다, 한국산 방공 무기가 실전 배치에서 96% 이상의 요격 성공률을 보이자 중동 국가들이 한국에 무기를 더 생산해 달라고 적극 러브콜을 보내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지연, 재고부족, 비용부담 등에 상시 노출된 미국산 무기에 비해 한국산 무기는 가격, 납기일 준수, 품질 측면에서 모두 경쟁력을 갖췄다"며 "전 세계 뉴스를 통해 'K-방공' 시스템의 우수성이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중동 3개국과 약 12조원 규모의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II(M-SAM)을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천궁-II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대, LIG넥스원이 교전통제소와 요격 미사일, 한화시스템이 다기능 레이더를 만든다. 올해 납품이 시작돼 2030~2034년 인도될 예정이었지만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현지에서 납품 조기화 요청 목소리가 높다.
특히 안보 위협이 높아진 사우디는 추가 발주 가능성도 점쳐진다. 사우디가 발주한 물량은 포대 기준 8~10포대로 추정되는데, 국토가 넓은 만큼 현 발주 물량으로는 사우디 정부의 '적극적 방어' 태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정부는 천궁II의 조속한 납기와 K9 자주포, 다연장로켓 '천무' 등의 도입도 추가 검토중이다. 이밖에 이라크는 K2 전차, UAE는 KF-21(보라매) 전투기 도입 논의 등도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는 방공체계와 전투기 수출이 동시에 이뤄지면 한국의 방위 산업 위상이 한 단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하자 조선업계도 화색이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발주가 늘어나 수주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유가 환경에서 장거리 운송 수요가 증가하면 VLCC 중심의 발주 확대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 최근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VLCC를 각각 3척씩 수주했다. HMM은 발주 취소 물량을 활용해 VLCC 6척을 확보했으며, 이 중 2척은 HD현대에서 건조 중이다.
해운업계도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에 따른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아프리카 희망봉을 경유하는 우회 항로를 택하면서 항해 기간이 약 2주가량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량 운송이 가능한 VLCC 수요가 증가하고 운임 상승 압력도 커지는 모습이다.
실제 컨테이너 운임을 나타내는 SCFI 지수와 유조선 운임 지표인 WS 지수(3월27일 기준)는 전쟁 발발 전(2월13일 기준)과 비교해 각각 54%, 78% 급등했다. 특히 VLCC 선대를 대거 보유한 장금상선은 항로 차질 속에서 해상 저장 수요까지 겹치며 수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반면 정유업계는 '유가 상승'과 '석유 최고가격제'라는 복합 딜레마에 빠졌다. 국제 유가 상승은 정제마진 개선 요인이지만, 중동산 원유 수급 차질과 가격 담합 의혹 등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선업과 해운업은 단기적으로 상승 사이클을 탈 순 있어도 전쟁이 장기화되면 글로벌 무역 수요 둔화로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며 "정유업의 경우 아라비아산 원유 수급 차질로 마진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